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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끼손가락을 걸어라

새끼손가락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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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년이면 삼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 꾸벅 일만 해왔다. (김유정 <봄봄> 1935)

점순이의 키가 크면 결혼을 시켜준다는 말에 벌써 삼년 하고도 일곱 달째

봉필 밑에서 데릴사위 노릇을 하고 있는 '나'는 뒤늦게 이런 후회를 한다.
틈만 나면 '장인어른'에게 성례成禮는 언제 시켜주느냐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돌아오는 소리란 게 고작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였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뒤늦게 깨달은 바 있어 데릴사위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갔을까?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만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 ...(중략)... 점순이를 남기고 인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부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봄봄>)

서로 불알을 움켜쥐고 죽일 듯 싸웠던 예비 장인과 예비 사위의 해프닝은 끝이 이랬다.
낙지는 드러누운 황소까지 일으켜 세운다지만, 성례의 약속은 실망감에 난리법석을 부리고,
그 덕에 흠씬 두들겨 맞고 끙끙 누었던 '나'를 또다시 벌떡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아~ 그 놈의 결혼 약속은 이렇게나 힘이 셌던가? '장인'과 '나'는 이런 식으로 다시 '약속'의 틀 속으로 들어온다.

약속의 틀 속에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나'와 봉필만은 아니다.



미쳐도 다시 한 번


‘느이 아부지 말을 믿었던 내가 미친년이지’
소설, 드라마, 영화 따위에서 닳도록 등장하는 ‘엄마’의 대사다.
엄마의 푸념 베스트10 안에 들지 않을까?
아무려나 저 대사 속에서 ‘아빠’가 ‘엄마’에게 모종의 약속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밤늦은 공원의 가로등 아래였을까, 마지막 배가 떠나버린 작은 섬의 항구에서였을까,
근사한 스카이라운지에서였을까, 아니면 최루탄 연기가 가시지 않은 캠퍼스 구석에서였을까?
아무튼 그 약속은 원만하게 이행되기가 도통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결혼의 전제가 약속이었다 해서 속물로 볼 필요는 없다.
호의호식도 그 약속의 부록이지만 그 보다는 ‘변함없는 사랑’이 약속의 핵심이니까 말이다.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약속이 기세를 부리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더 든든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사랑의 약속이고,
이 사랑의 약속에 이끌려 남남이던 남녀는 부부라는 두려움을 이기고 전혀 다른 세계에 성큼 발을 들여 놓는다.

입에 쓴 약의 경우는 어떤가.
병을 낫게 해주리라는 약속. 그 약속이 당장의 고통을 참고 약을 삼키게 만드는 힘이다.
쓰고 말 뿐이라면 누가 쓴 맛을 감당하려 할까? 그건 생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본능을 넘어 쓰고 역겹고 징그러운 것들이 약속하는 건강을 믿고 우리는 오늘도 삼킨다.

생과 사의 갈림길 앞에서는 의사가 하는 '최선을 다 하겠다'는 약속도 감사할 따름이다.
생과 사를 주관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한계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들이겠으나 성공확률이 별반 높지 않은 수술이라도 감행하고 싶은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엔 이제 통계와 의학이 주는 약속은 사라지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과 집도의執刀醫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약속이 된다.
그 약속이 결국에 지켜지는지는 신의 영역이겠으나,
메스를 든 인간의 전존재적 성실함을 담은 약속은 신의 약속과도 같은 간절함을 얻으며
마지막 길이 될지도 모르는 수술실로의 하얀 복도를 걷게 한다.

약속은 이처럼 미지의 세계로 발 디딜 용기를 갖게 한다.
미지의 세계란 결혼 이후의 생활일수도, 약 복용 이후의 내일일수도,
책 표지 안쪽의 본문일수도, 문 안쪽의 가게일수도, 포장지 안쪽의 제품일수도, 선거 이후의 새로운 정부일수도 있다.

약속이 없으면 광고도 없다

광고의 경우, 약속은 뼈와 살이다.
특히나 제품광고라면, 약속이 없다면 광고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광고는 무수한 약속을 쏟아낸다.
소비자는 기능이 향상된 제품을, 디자인이 개선된 제품을, 좀 더 가치 있는 제품을 사길 원하며,
광고는 그런 ‘이익’을 약속하며 선택을 기다린다.

이 화장품을 쓰면 촉촉해질 거예요.
이 차를 타면 성공한 사람으로 보여요.
이 약 한 알이면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는 거예요.
이 교복을 입으면 다리가 길어 보여요...
약속은 무궁하고 그 약속하는 바를 얻기 위해 소비자는 지갑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