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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의 칼을 꺾은 건 이야기였어 - 스토리텔링에 대하여

왕의 칼을 꺾은 건 이야기였어 - 스토리텔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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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담이 구수해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사람도 있고,
주워들은 게 많아서 어딜 가도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도 있지만,
이야기로 자신의 목숨은 물론 수많은 여인들의 목숨을 구한 이가 있으니
그녀의 이름은 셰헤라자데
Scheherazade.

노예들과의 은밀하고 난잡한 생활을 즐긴 왕비를 응징한 후,
치가 떨리는 배신감에 날마다 새로운 왕비를 들이고
다음날 아침이면 살해했던 샤리아르
Shahryar 왕을 멈추게 한 그녀다.
중동의 구전문학을 집대성한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千一夜話]
일천 하고도 일일 동안 이어진 목숨을 담보로 한 이야기의 연속으로,
다음날 아침이면 죽을 운명인 여인을 살린 건 다름 아닌 이야기의 힘이었다. 


(월트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 '알라딘' / 디즈니 홈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캡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 예를 들면 더 많은 재물과 더 넓은 땅,
더 짜릿한 전쟁이라면 샤리아르 왕을 멈추게 할 수 있었을까?
아니, 대신의 딸이었던 셰헤라자데가 모든 것을 가진 왕 앞에 달리 내어 놓을 것이 있었을까?
증오에 휩싸인 군주 앞에 그녀가 가진 단 하나의 힘, 스토리!
다이아몬드보다, 칼보다 더 큰 힘은 생각의 힘이자 창의의 힘이며,
이는 부자이거나 빈자이거나, 높거나 낮거나 할 것 없이
세상 모든 이들이 나누어 가진 평등한 무형의 보물인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가 가진 놀라운 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죽음의 면사포를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昔有桓因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하니, 아비가 자식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줄 만했다. 이에 천부인 셋을 주어 보내어 다스리게 했다

삼국유사는 이런 이야기로 우리 역사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으며,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아주 오래 전, 멀고 먼 우주 한 편에서는...

1977년 처음 선보인 SF 대작 스타워즈는 이렇게 시작함으로써 SF의 전형을 낳았다.

미국에서만 연간 4,500만 명, 도쿄의 경우 누적 6억 명에 이르는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 [디즈니랜드]는 미키마우스와
온갖 월트 디즈니가 창조한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모여서 이룬 나라이며,
이 땅의 엄마들이 마지못해 사주기는 하면서도 원수처럼 여기는
(왜 원수처럼 여기는 지를 부모들은 다 안다. 토마스는 각 가정에서 기둥뿌리 하나씩은 뽑아가고 있다)
[토마스] 기차는 기차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기차 이야기와 함께 팔린다.
[뽀롱뽀롱 뽀로로]는 이야기로 시작해 캐릭터가 되고, 장남감이 되고 문구가 된 사례다.

공룡은 화석과 발자국으로만 남았으나 이 또한 이야기로 환생한다.
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공룡의 백과, 공룡의 이야기, 공룡 공룡이 엄연한 장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어찌 그리 공룡과 친한가? 공룡의 어떤 점이 아이들을 이끄는 것인가?
그것이 공룡의 생김새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도 세상의 아이들은 공룡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하루를 성장하고,
공룡과 어울려 노는 또 하나의 꿈을 꾸러 침대에 올라간다.

이야기는 이제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첨단 기술이라기보다는
소비자가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하는-아이들이 공룡을 안고
침대에 들어감으로써 공룡 이야기 속에 편입되기를 바라듯이- 이야기
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브랜드를 키우고 양성하는 일은 어린이 혹은 어른을 위한 꿈의 공장이 되는 일이다.

꿈의 원료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베트남전에서 총알을 막아준 일화를 간직한 <지포 라이터>처럼,
아폴로 11호와 함께 달에 착륙한 최초의 카메라라는 드라마를 가진 <핫셀블라드>처럼
성공하는 회사들은 모두 이야기 회사들인 것이다.
이야기로 불을 켜고, 이야기로 사진을 찍고...

우리는 이야기의 우주 속에 있다.